어떻게 해야 좋은 언어를 쓸 수 있을까?

1.
마르슬랭님 블로그에서, 그 분의 친구들이 슬랭님 한국어 블로그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읽는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아, 그럼 나도 내 블로그 미국 친구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거? 그래서 한번 테스트 해 보았다.

번역의 적절함은 둘째치고, 내 블로그가 영어로 가득 차 있으니 이것도 꽤 그럴 싸 한데-_-??

그런데 내용을 대충 눈으로 읽어보던 나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만일 -> 10001 [......]
오오(감탄사) -> 55 [..........]
날아왔다 -> nalahwatda [........................]
; 난 '날라왔다' 라고 쓴 것도 아니고 '날아왔다' 라고 썼는데 ... 아 이게 한 단어가 아니고 날아+왔다 로구나.. 두 단어 이상이 복합된 동사는 이해를 못하는듯?

물론 내용 면에서도 아주 간단한 문장을 제외하면 안드로메다 익스프레스를 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마 저 영어 번역을 본다면 읽는 사람도 꽤 깝깝할 듯 하다...

2.
영어와 한국어의 여러 가지 차이 때문에 번역기를 통한 1:1 번역은 아주 힘들다.
사실 나는 아주 간단한 영어도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들어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고.. ㅠㅠ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맞춤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맞춤법을 지키는 것과 번역기로 번역이 쉬운 문장을 쓰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일상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구어체의 문장이 나오게 된다. 한국어는 어지간한 문장요소는 생략해도 웬만하면 다 말이 되는 언어다. 주어조차도 그것이 명확한 상황에서는 생략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앞의 두 문장에서 "생략하다" 라고 썼는데, [말하는 사람이] 생략해도 된다는 의미이고 ('말하는 사람이'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저렇게 써도 말이 된다는 것은 네이티브 한국어 스피커-_-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어로 쓴다면 "생략되다"의 형태로 써야만 말이 될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어 나름의 어법이 있고, 영어는 영어 나름의 어법이 있다.
번역기를 통해 번역이 쉬워지도록 한국어 글을 쓸 수 있겠지만, 그것은 번역하기 좋은 글일지 몰라도 한국어 문장으로서 좋은 글은 되지 못할 것이다.

3.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1년하고도 반이 넘었다. 그간 사용한 영어는 그 이전에 사용했던 영어의 양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내 입에서 나오는 어글리한 소리에 치를 떨면서도, 그 언어를 사용해서 대충 굶어 죽지 않고, 수업도 듣고, 교수랑 논의도 하고, 프로포절도 써 내면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내 메인 언어는 누가 뭐래도 한국어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단 내가 하는 생각은 모두 한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내가 어떤 생각이든 하는 시간이라면 나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거다. 뭐 이건 지금 상황에서 노력으로 어떻게 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학술적인 용도를 제외하면 거의 한국어 웹을 사용하니까, 그 시간에도 나는 한국어를 쓰고 있다.

그렇지만 요즈음의 언어 생활은 참으로 수동적이다. 주변에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한 한국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는 건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 혹은 수동적으로 웹에 널려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그리하여 나의 한국어는 많이 피폐해졌다. 사람이랑 말을 하지 않으니 말 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어쩌다 다른 사람과 말을 할 때에는 정말 심하게 횡설수설한다. 나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해야 그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지 알지 못한다. 나랑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저건 뭐하는 병신이야...'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만큼 횡설수설했거든.

[영어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람이랑 말을 많이 해야 말하는 법을 아는건데 영어 생활은 한국어 생활보다도 비참하니 뭐.. ㅠㅠ]

그리고 가끔씩 글을 쓰거나 길게 말할 때 나는 내 한국어가 어설픈 영한번역 투가 된 것을 보고 놀란다.


점점 의사소통에 자신이 없어져 간다.. 한국어도 영어도..
어떻게 해야 좋을까.

by 큐브 | 2009/03/08 14:30 | 유학생활이야기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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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emilla at 2009/03/08 14:50
저도 그래요... 말에 더욱 자신이 없어집니다.
오늘도 엄마랑 통화하는데 같이 한국말 할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책이나 시집을 읽으라고 하시더라구요.. 근데 그다지 땡기지가 않네요. 그냥 이글루스 구경 다니는 걸로 위안 삼고 있어요;;;
Commented by 큐브 at 2009/03/08 15:02
그게 수동적인 언어생활 (남이 써둔 글 읽기 등..)이랑 능동적인 언어생활이 언어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지 말입니다. 읽기/듣기랑 말하는 게 같이 가야 언어가 발전하는데 계속 수동적인 언어 생활만 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는 거 같아요. 영어도 한국어도..
Commented by 破滅のani君 at 2009/03/08 15:21
친구를 불러서 (메신져든, 국제전화든) 한번즈음 수다를 떨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수다 만큼 좋은 것은 없을것 같아요 ^^)
Commented by 큐브 at 2009/03/09 12:31
네.. 정말 수다가 필요해요 ㅠㅠㅠ 근데 전화도 쉽지 않네요 ㅠㅠ
Commented by 은사자 at 2009/03/08 18:26
ㅋㅋㅋ 저도 슬랭이처럼 주변 친구들한테 블로그를 가르쳐줘서 친구들이 제 블로그 번역기로 돌릴때가 있는데 "은사자" 자체가 "buy silver"로 나와요..ㅋㅋ

그 언어가 준다는 느낌..맞아요..있어요. 전 언어가 주는 느낌은 둘째치고 유머감이 떨어지는 느낌은 받아요. 저 예전에 한국에 있을때는 확실히 여기저기서 탁탁 치고 들어가는 타이밍을 잘 알고 유머의 포인트를 알겠는데 이제는... 타이밍에 자신이 없어져 가요. 저도 친구와의 수다나 블로그가 그나마.. 근데 확실히 한창때에 비해 표현력이 줄엇어요 ;ㅁ;
Commented by Semilla at 2009/03/09 02:26
buy silver 너무 웃겨요......
Commented by 큐브 at 2009/03/09 12:31
앗 그러게요 번역 참 웃기네요 왜 Let's buy silver가 아니구.. [퍽퍽퍽]
으 저는 타이밍을 맞추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발화 자체에 문제가 있음.. ㅠㅠ
Commented by Mannoya at 2009/03/09 09:58
저도 그런문제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제법 고전부터 현대문학까지, 언어영역을 두루 섭렵하여 날렸었는데....다 커서 나와놓고 몇년이나 되었다고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말이에요. 영어도 엉망인데 한글까지 이럴수는 없는겁니다~ 엉엉엉 ㅠㅠ
Commented by 큐브 at 2009/03/09 12:31
... 다들 문제죠. 늘지 않는 영어와 줄어드는 한국어 ㅠㅠㅠ
Commented by JM at 2009/03/10 01:40
제가 옛날 회사 다닐 때, 기술 문서 번역을 외주 맡긴 적이 있어요. 근데 어처구니 없게 번역기를 돌린 다음 대충 다듬어 왔던 거예요. 완전 개판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투덜거리면서 일주일 걸려서 통째 다시 번역했었는데.... 당시 회사 전체를 폭소하게 했던 번역은....

첫 장에 적혀 있던 제 (작성자) 이름인

구종만



Old Version Only

로 번역해놓은 것이었습니닥.....;;;;
Commented by 큐브 at 2009/03/12 12:33
음, 그런 경우를 꿈보다 해몽이 낫다고 하던가요? [맞는다]
아니 근데 외주인데 번역기를 돌리다니, 돈 받고 그런 거면 좀 너무하네요;;
Commented by 수현 at 2009/10/08 23:45
조금 슬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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